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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사회

[전공의파업4]블라인드에 올라온 지방 내과 의사의 정말 솔직한 글

by 사라보 2024.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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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과 의사샘 정도의 식견과 솔직함이었다면 현 의사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을 것 같다.

긴 글인데 단숨에 읽히더라

 

-.실비보험이 망친 보험수가,공공의료

-.정부가 꼭 참고해야 할 부분

-.정치인이 해야할 부분까지 서술 되어 있다.

-.물론 현 상황은 의사들의 자업자득이라고도 한다.

 

 

 

0.
안녕. 블라에 글 처음 써서 좀 오그라드네. 나는 지방 소도시에서 일하는 소화기내과 의사야. 실제로 바이탈 업무를 하고 있어. 대학교수는 아니고, 비대학 종병에서 일해. 대학교수님들같이 고급한 술기는 없지만 내가 훈련받고 경험해온 내과 의사로서의 소양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동원해 지역 중환들 케어하고 있어. 내시경 이물 제거술, 내시경 지혈술, 간경화 환자, 패혈증 쇼크 환자, 기계 환기 환자 관리 등등... 내 역량 닫는 만큼 환자 보고 안 될 거 같은 환자는 대학 병원 보내. 대학 병원까지 가기 어려운 지역 환자들의 잡다한 문제를 해결하는 의사 정도로 생각해도 돼. 소개는 여기까지 하고. 의대 2000명 증원 이슈에 대해 여러 가지 현실과 솔직한 생각을 좀 길게 써볼까 해. 환자한테서도 동료 의사들한테서도 환영받지 못할 이야기가 있을 거야. 이야기가 너무 자세해서 내 신변이 털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뭐 일단 글은 시작해 본다. 내가 하려는 이야기를 제목에 추렸는데 선 세 줄 요약을 하자면 이래.

 

의대 증원은 그동안 의사들이 쌓아온 업보 때문에 이번만큼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의료계 현실은 복잡하게 속속들이 썩어있고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다.
이대로 가면 의사를 연 이천 명을 늘리든, 삼천 명을 늘리든 아름다운 미래는 오지 않을 것이다.

 

이야기는 먼 길 돌아갈 거야. 길면 그냥 가던 길 가.

 

1.
의사로서 당연히 이천 명 증원은 너무 나갔다고 생각해. 반대하는 이유는 앞으로 나오겠지만 내 밥그릇 문제에 대한 공포가 크다는 건 인정할게 ㅎㅎ. 어쨌거나 이천 명이 안 되어도 수백 명 정도 수준의, 많게는 천 명 수준까지도 이번엔 증원을 막을 수 없을 거야. 이번만큼 증원에 대한 여론이 막강할 때가 없었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 다 버리고 단지 국민 여론만 보는 거야. 지난 증원 때는 무슨 시민 단체가 추천해서 공공 의대 어쩌고저쩌고... 보수당이 같이 반대 측에 서줘서 막을 수 있었지만 이번엔 믿는 보수당이 그보다 다섯 배는 더 강한 숫자를 들고나왔고 여론 십자 포화는 막강해. 거의 모든 여론이 의사를 때리는 데엔 의사들의 업보가 있다는 걸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고 봐.

당장 블라 며칠만 봐도 알 수 있는 그 박제된 스샷들 있잖아? 오르비에서 철도 노조 파업 두고 수준 낮은 행동이지, 못배워서 그래요 (좋아요 144). 어떤 의사에게 진료받고 싶으싶니까? 전교 1등 어쩌고 vs 성적은 한참 모자라지만 그래도 의사가 되고 싶어서 어쩌고저쩌고. 아 이런 엑스맨들이 없다 정말. 또 있지. 그 유명한 7급 공무원보다 생애 소득이 적다는... 무리수도 적당해야지 정말. 그리고 어제인지 오늘인지 의사에 대한 도전,이라는 워딩. 쓰면서 정말 한숨이 나온다 ㅋㅋ. 마지막으로 하나 더. 간스유예기엔 플필헤네카.

의사가 평생 감내해야 할 것은 국민들의 적개심이고 난 거기에 근거가 없다고 생각했어. 왜 우리를 미워하나? 생각이 바뀌었어. 근거가 없진 않더라고. 그동안 의사들이 적어도 인터넷상에서만큼은 너무 오만하고 저열했어. 대 인터넷 시대인 만큼 일부의 일탈이 새어나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고 항변할 수 있었겠지. 하지만 일부라고 치부하기엔 상기 주장에 진정으로 공감했던 의사들이 많을 거야. 업보가 쌓여서 터졌고 우리는 응분의 대가를 치르는 거지. 증원빔 처맞는 수밖에. 좀 봐줘서 오백 명 정도로 늘려주면 안 될까...?? (대충 카이지 무승부 짤)

 

 

 

2.
이제부터 민감한 내용 많이 나온다. 주제가 너무 넓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소단락으로 나누긴 하겠는데, 이마저도 너무 길면 글 두개로 끊을 수도 있겠다. 환자나 비의사 국민으로서 동의 못하는 부분도 많을 것임. 한편으론 동료 의사들에게도 욕먹을 수 있을 것이고.

2-1)
의사 월급.

어떤 글의 리플 보니까 증원 좀 해서 월 2000 벌던 거 1600-1700 좀 되면 어떠냐는 말이 있더라. 돈 자랑하는 의사들이 많은 건지 어디서 의사는 봉직하면 기본으로 이천 벌고 시작한다는 식으로 사람들이 알고 있나 모르겠네. 일단 나 지방 소도시에서 일하고 중환까지 다 보는데 통장에 실수령 이천이 안 찍혀. 실수령 이천은 의사들도 엄청나게 일을 해야 받을 수 있는 돈이야. 나 처음 일할 땐 천오백 중반을 실수령으로 받았고, 그 다음 해엔 천칠백 후반, 작년엔 천구백 후반을 받았어. 일이 워낙 고되고 환자 풀 쌓이며 매출 늘어나니 나도 월급 계속 올려달라고 해서 올핸 드디어 이천 넘기긴 해. 근데 그만큼 일 많이 해 나는. 일단 블라인들 설날에 웬만하면 다 쉬었지? 나는 설날 3일을 콜당직 받으며 환자 입원시키고, 매일 회진 돌고, 응급 내시경 하러 또 세 번 추가로 나갔어. 매 연휴마다 내가 당직 서는 건 아니고 우리 소화기내과 의사들이 돌아가면서 하는 거긴 하지만 연휴에 걸리면 꼬박 일하는 거야. 내 환자 안 좋으면 밤이고 새벽이고 나가서 환자 조치해야 해. 안 좋은 환자 있으면 주말에 멀리 안 나가. 토요일, 일요일은 한두 시간이라도 병원 나가서 안 좋아질 수 있는 환자 체크하는 편이야. 이게 요즘 다들 안 하려고 하는 입원, 응급, 중환 다 봐야 하는 지방 종병 내과 의사 역할인데 4년차 들어서야 실수령 이천 넘어간다고. 내과 의사 중에서도 페이 굉장히 센 편이야. 나 스스로 특별한 사명감을 가진 의사라고 생각 전혀 안 해. 내가 일반 국민들보다, 동료 의사들보다 돈 많이 받는 걸 알고 내 받은 만큼 그저 일한다고 생각해. 난 돈 받고 일하는 프로고 거기에서 내 스스로 부끄러움 없으면 사명감은 아무래도 괜찮지.

 

 

 

2-2)
저수가.

드디어 나왔다 수가 타령. 하지만 어떻게 해? 저수가 사실인걸. 내가 설에 응급 내시경 했다고 했잖아? 응급 내시경 케이스 세 건이었는데 이물 제거술이 두 건, 출혈 환자 지혈술이 한 건이었어. 설 당직 가시 환자 많이 와. 훠킹 동태전... ㅋㅋ. 아무튼 첫 번째 환자는 명태 가시 박혔다고 왔고 그거 시원하게 제거해 줬어. 병원마다 응급 내시경 멤버 세팅이 다르지만 우리 병원은 의사 한 명에 보조 인력 셋이야. 나는 이런 응급 진료까지 하는 걸 내 월급에 다 포함 시켜놔서 응급 출동비가 없고 ㅜㅜ 우리 간호사랑 조무사들은 출동 건수마다 오만 원 내외로 받는다고 알아. 자 그렇다면 한번 응급 내시경 팀이 가동되면 인건비만 십만 원에서 십오만 원 사이로 추가 지출이 발생해. 의사 추가 지출을 막아놨음에도. 명태 가시 환자 진료비는 얼마 나왔느냐면 22만 원 정도야. 환자가 내는 돈 14만 원에 국가 부담 8만 얼마 해서. 펜라이트랑 포셉가지고 하는 것도 아니고 억대 가격의 감가 상각 있는 장비 세팅하고 소독하며 하는 일이 그래. 두 번째 환자는 가시 박혔다고 왔는데 가시가 없었어. 이게 사실 더 많은 케이스야. 가시 박혔다고 하는데 긁고 지나갔고 이물감만 있는 거. 이러면 병원은 이물 제거술 수가를 못 받아서 총 진료비 17만 원 정도를 받아. 인건비는 똑같이 십수만 원 나갔네요. 거 출동 인력이 너무 많은 거 아니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가시 같은 환자만 오지 않고 실제로 험악한 위장관 출혈이 가끔 오기 때문에 인력 세팅을 넉넉하게 해놨어. 식도 정맥류 출혈, 펌핑하는 궤양 출혈 같은 건 나랑 간호사 단둘이선 뭘 할 수가 없거든. 보조 인력 셋은 있어야 안전하고 신속하게 술기 진행할 수 있어. 세번째 환자가 직장 출혈이었는데 지혈술 수가는 얼마느냐면 22만 원이야. 보통 출혈 환자는 입원하기 때문에 그날의 가격은 알 수 없고 술기 수가만 말하면 이래. 지혈술이 정말 심플하면 22만 원이 이문이 남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출혈은 살 떨리는 케이스도 많아. 요즘 같은 시대엔 지혈술 했음에도 환자 안 좋아지면 나한테 법의 칼날이 올 수도 있는데. 22만 원.

 

2-3)
그럼 돈은 뭘로 벌어?

각종 검사와 다양한 입원 환자 매출로. 그래도 병원이 규모가 있다 보니 웬만한 검사는 자체로 다 되는데 자체 검사실이 있으면 검사 원가를 위탁보다 낮게 가져갈 수 있어서 검사하면 돈이 좀 남긴 할 거야. 특히 남는 건 CT나 MRI 같은 영상 검사겠지. 나는 소화기내과라서 MRI 찍을 일은 별로 없고 초음파, CT 처방이 주력이야. 초음파는 안 세어봤고 CT는 내가 일 년에 대략 천 건 정도 처방을 내. 엄청나지. 보통 혈액 검사도 같이 하니 매출이 CT 한 번에 33만 원 정도 나와. 그걸 일 년에 천 건 찍으니 돈 좀 벌어다 주겠지. 근데 문제는 이 천 건 중 의사가 꼭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찍는 경우는 절반 정도밖에 안 된다는 거. 나머지 절반 중 일부는 환자가 원해서, 일부는 방어진료의 일환으로, 또 일부는 과잉 진료에 해당할 수도 있을 거야. 요즘 들어 환자들이 등 아프다고 진료실로 와. 그 조회수 수백만 찍은 내과 여의사 유튜버가 등 아프면 췌장암입니다, 이래서 그거 보고 다들 와 (센세 혹시 보고 계시나요. 센세의 공이 큽니다 ㅋㅋ). 등 아프다는 이야기하면 이제 나는 검사 뭐 생각하고 오셨냐고 먼저 물어봄 ㅋㅋ. 그렇게 췌장 검사하느라 CT들을 찍는데 3년 동안 등 아파서 췌장 꼬리 암 있었던 사람은 아직 한 케이스도 없었네 아직. 방어진료 또는 과잉 진료의 일환은 이런 경우. 요즘 회사에서 해주거나 개인이 돈 많이 내고 전신 검사를 긁는 경우가 있는데 거기에 암 표지자가 들어간단 말이야. CA 19-9라는 췌담도 계열 암 표지자가 있어. 이거 조금 높아졌다고 다 내 진료실 들어온단 말이야. 처음엔 CA 19-9가 암 검진 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지표다, 실제 췌장암이 있을 가능성은 낮다 어쩌고저쩌고 설명했지만 요즘은 더 설명 안 함. 환자들은 그냥 검사해서 완벽하게 내가 괜찮다는 걸 확인하길 원해. 그리고 나도 정말 만에 하나 케이스에서 그냥 두고 봅시다 했다가 췌장암 나오는 걸 겪기 싫고. 요즘엔 거의 다 CT를 찍어. 아주 약간의 CA 19-9 상승에도. 환자도 나도 불만이 없고 깔끔하지. 당연히 췌장 병 나온 사람은 한 건도 없었어. 참고로 대한 췌담도내과학회에선 건강 검진 목적으로 CA 19-9를 시행하지 말 것을 권고해. 암 조기 발견의 이득은 없는데 필연적으로 과잉 검사가 유발되기 때문이지.

 

2-4)
실비라는 괴물.

아까 CT 찍은 사람들 있잖아? 소견서 써달라는 사람이 점점 많아져. 필요해서 찍었다라는 식으로 써달라는 거지. 내시경 검사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야. 복통 평가 위해 내시경 검사했습니다,라는 소견서를 써달라는 거지. 이러면 아마 실비 보험에서 검사비를 돌려주나 봐. 입원시켜서 이것저것 검사해달라는 사람도 있었어. 처음엔 한두 명 해줬는데 너무 날 귀찮게 해서 요즘엔 실비 목적으론 입원 안 시켜줍니다 하고 컷 해. 난 병원 오너 아니고 봉직의고 내 매출을 이런 식으로 올리고 싶지 않아. 병실도 부족한데 아파서 입원하는 사람이 우선이거든. 아무튼, 내가 평소에 낸 실비 가지고 검사 좀 한 게 뭔 잘못이요? 할 수 있겠지. 응, 잘못이야. 우리 건강 보험 지불 구조 알지? 본인 부담금 30퍼센트, 보험 70퍼센트. 실비에서 30퍼센트만 받으니까 잘못 아닌 게 아니야. 본인 부담금 30퍼센트를 지우는 순간 비용 저항이 없어져서 이 검사, 저 검사 다 하고 그때마다 나머지 진료비 50퍼센트에서 70퍼센트가 보험 재정에서 꼬박꼬박 그 환자한테 나가거든. 실비 없는 사람은 이게 나한테 꼭 필요한 검사일까? 스스로도 고민하고 의사랑 상담한 뒤 심사숙고해서 결정하는데, 실비 환자는 비용 저항 없이 의료 쇼핑을 하고 보험 재정 또한 그때그때 다 빨아먹는단 말이야. 어떤 환자는 3개월씩 받으면 되는 약을 2주치씩 받으러 와. 이유는 설명 안 해도 알겠지. 그때마다 그 환자한테 우리 보험 재정이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거지. 왜 환자만 탓하느냐고? 예야, 정확합니다 당신. 병원도 같이 꿀을 빱니다. 그래도 나는 보험과, 바이탈과 의사고. 내가 먼저 실비 여부를 확인하고 환자에게 검사 차별을 하지 않아. 내가 필요한 케이스에선 찍고, 불필요하다고 하면 안 찍고. 소견서 써달라는 환자의 요구가 너무 무리하지 않으면, 거절할 명분이 없어서 그냥 적당히 써 줘. 실비로 낭비되는 의료 행태를 그냥 두고 볼 수밖에 없는 거지. 동료 의사들에게 욕먹을 소리가 여기서 나오는데 실비를 이용해서 매우 큰 매출을 올리는 몇몇 과들 문제 확실하지. 실비만 받아먹는 게 아니라 환자와 함께 보험 재정 슈킹하는 공범이니까. 이번에 급여, 비급여 혼합 진료 금지 정책안도 있었잖아? 나는 어느 부분 매우 동의해. 이 실비 시장을 무너트리지 않으면 보험 재정은 남아나지 않을 거야. 그래서 난 생각해. 실비로 해결할 거면 보험 재정을 받지 않고 실비로 진료비 100퍼센트를 전부 부담하게 해야 한다고. 일종의 사보험이 되는 거지. 도수 치료 시장 연 1조 규모. 말이 안 나오지. 어디는 돈이 안 되어서 전문의 배출이 안 되는데 어디는 실비로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모으지. 실비는 의료 시장 왜곡의 일등 공신이야. 무분별한 보험 재정 슈킹을 못 하도록 제한을 많이 걸고 대대적 개편을 해야 한다고 봐.

 

 

 

 

2-5)

생명 주의.

실제로 이런 주의가 있는지는 모르겠어. 내가 만들어 낸 말이야 미안 ㅋㅋ. 남녀노소 어떤 상황을 막론하고 생명 그 자체가 최고의 가치이고, 우리 모두는 그것을 지켜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정도로 풀어서 써보면 될까? 이해를 돕기 위해 한 사례를 가져와 볼게. 아는 사람은 알만한 보라매 병원 사건. 한국 인공호흡기 치료의 한 획을 그은 역사적 판례이지 ㅎㅎ. 자세한 전말은 나무위키를 참고하시고. 아무튼 그때 의사들이 살인죄 판결을 받았어. 집행 유예였지만. 그 이후로 한국은 가망이 있든 없든 인공호흡기를 한번 꽂으면 그때부턴 치료를 포기하고 싶어도 환자가 살아있으면 포기를 못하게 됐어. 무자비한 맹목적 생명 주의지. 내 환자 중에 암말기 뼈전이까지 다 된 분이 있었어. 타 대학 병원에서 항암 치료받고 기운이 없다고 연고지 병원에 일단 온 건데 호중구 감소가 심했어. 항암 치료로 인한 호중구 감소증이고 이 정도는 케어해 줄 수 있으니까 백혈구 촉진 주사 맞으며 치료하자고 입원시켰지. 그런데 폐렴이 급속도로 진행해서 인공호흡기 걸 정도까지 되는 거야. 그때 보호자한테 난 말했어. 인공호흡기 웬만하면 하지 말자고. 뼈 전이면 말기 중에 말기인데 이 정도하고 보내드리자는 식으로. 보호자가 숙고하더니 심폐소생술은 안 하겠지만 인공호흡기 치료까지는 해달라고 하더라. 승압제를 쓰고 기계 환기 시작했지. 환자 면역이 워낙 약하니 치료가 지난했어. 발관이 안 돼서 기관 절개도 하고 중환자실에서 6주 정도 있었을 거야. 버티고 버텨서 인공호흡기 그제야 뗄 정도가 됐지. 내 기억에 한 1-2주는 보호자 얼굴도 가끔 볼 수 있는 그런 날을 보내다 결국 다시 폐렴이 급속도로 악화되어 돌아가셨어. 환자분은 대략 두 달간 병원에 있었고 총 진료비가 육천만 원 정도 나왔어. 본인 부담금은 중증 적용해도 어쩔 수 없는 비급여가 워낙 이것저것 있어서 천만 원 가까이 나왔던 것 같고. 내 두 달의 치료가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과연 마지막 위안을 줬는지는 모르겠어. 아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더 들어. 서두가 길었는데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하자면 이래. 우리는 완치 가능성이 없는 말기 암 환자들 치료에 너무 많은 보험 재정을 사용하고 있다는 거. 내가 내과 의사로서 십수 년을 일하면서 점점 굳어지는 생각은 이래. 모든 생명의 가치가 같지 않다는 거야. 빛나는 젊음을 가진 인간의 생이, 소생 가능성 있는 생이 내겐 더 우월해.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암환자들은 대학 병원에서 VIP야. 매출 1등 공신이거든. 암 진단만 되면 빅파이브도 예약 보통 2주 컷이야. 예약 몇달 걸린다는 리플이 가끔 보이던데, 그거 빅파이브 안에서도 전국구 명의 찾으니까 그런 걸거야. 아무튼 빅파이브에서 항암 치료 열심히 하고 더 이상 쓸 항암제가 없어지는 단계가 되면 비로소 환자는 동네 병원의 내게 내려와서 생을 마감하지. 모르긴 몰라도 거의 생의 마지막 단계에 총진료비를 수천만 원에서 억 단위로 쓸 거야. 쓰면서도 가혹한 욕이 등에 꽂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냥 끝까지 말할게. 우리가 한정된 의료 자원을 무한히 늘릴 수 없고, 그것을 경중에 따라 분배해야 한다고 하면, 지금의 4기 고형암 치료에 대한 무제한적 지원은 재고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말기 환자들을 끝까지 잡고 있는 게 정말 이 시대의 도덕과 윤리에 부합한지 우리는 논의 조차 한 적이 없지.

 

2-6)

지방 의료.

길게 설명 안 해도 요즘은 전국에서 빅파이브를 찾아가는 현실임을 다들 잘 알겠지. 빅파이브 좋긴 하지. 하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흔히 겪는 질환-대부분의 암을 포함해서-에서 지방 의대 병원과 빅파이브 치료 성적이 크게 차이 안 나. 치료 성적과 질 차이 나는 건 간이식, 심장 수술, 정말 전국적으로 환자가 거의 없는 희귀 질환 진료에서일 거야. 위암, 대장암 비롯한 유수의 암은 환자가 많아도 너무 많아서 지방대 병원도 다들 일 년 내내 그 수술하고 있고 다 수술을 잘 한다고. 난 실제로 환자들한테 이렇게 설명하고 차후 관리까지 생각하면 더더욱 근처의 대학 병원 가라고 적극 권해. 인근 대학 병원 가서 치료 잘못됐다는 이야기 역시 아직 못 들었고. 그런데 심지어 암 4기 환자들까지 빅파이브를 찾아가지. 이건 정말 말리고 싶으나 듣질 않지. 말기 암 항암 치료야말로 교과서 공식대로 첫 번째는 무슨 약을 썼다가 질병 진행되면 그다음 약제를 쓰고... 이런 식으로 프로토콜이 전 세계 공통인데 말이야. 이것도 내가 서울 유명 병원 찾아가겠다는데 뭐 잘못된 거요 할 수 있겠지. 사실 말릴 수 없지. 그러나 지방대 병원이 평소 낭낭한 수익을 가지고 있어야 각종 응급 심뇌혈관, 중증 외상 진료 의료 인력을 여유 있게 가동할 수 있는 거지. 다른 의사 선생님 블로그에서 본 문구를 가져와보면 이래.

[ "암 수술, 허리 수술, 뇌 수술은 2-3주 시간 여유라도 있으니 최고 명의 알아보고, 서울 빅3 병원에서 진료 볼거다. 내 돈 내고 가겠다는데 뭐가 문제냐?" + "내 집 앞 병원은 심혈관, 뇌혈관, 중증 외상만 골든 타임 내 치료해 주면 된다." 상식적으로 이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는지? ]

 

2-7)

의료의 필연적 한계. 불확실성.

의사들이 바이탈과 안 하는 이유 중 최근 가장 큰 건 사법 리스크 때문이야. 다른 의사보다 조금 적게 벌어도 자기 전공을 살리고 사람 살리는 데서 기쁨을 얻는 의사들이 꽤 많았어. 확신하진 못 하지만 아마 그랬을 거야. 그런데 요즘은 돈 덜 버는 것보다 사법 리스크가 너무 커서 다들 바이탈을 안 해. 덜 벌어도 의사는 일반 직종보다는 많이 버니까 돈은 자아실현에 중요한 문제가 아니지. 그런데 최근은 환자를 놓치면 정말 큰 법적 책임을 묻는 시대가 됐어. 예전처럼 보호자들이 순순하지가 않아. 녹음기부터 들이밀고 (어쩔 수 없이 녹음할 거면 제발 티 안 나게 해주세요 제발...) 진료 기록 샅샅이 뒤져서 걸 수 있으면 일단 건단 말이야. 의사가 최종 승리해도 상처뿐이지. 시간, 돈이 안 나가는 것도 아니고 내 지나온 길에 회의가 든단 말이야. 만약 정말 잘못된 부분이 있어서 소송 진다면 요즘 배상은 상상 이상이야. 기사에서 보듯이 억 소리가 나지. 의사에게도 매우 큰돈이야. 특히 소아 진료에서 사법 리스크가 가장 문제야. 소아는 일단 살려야 한다가 디폴트가 되다 보니 보호자들이 어려운 소아 진료가 결국 잘못된 것임에도 납득을 하지 않고 의료진을 고소하는 경우가 종종 있게 되지. 소아 환자 소송 지면 그 소아가 살아서 냈을 평생 소득을 환산해서 물어줘야지. 아반떼인 줄 알고 대리운전했다가 사고 났는데 람보르기니였던 거지. 너무 불합리하지 않아? 이대 목동 병원 사건은 그 와중에 결정타를 먹였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소아과 오픈런 좀 한가하게 해줄 동네 소아과 의사들이 아니야. 용감하게 신생아 목숨 살려낼 신생아 중환자실 전문의, 소아외과, 각종 소아 중증 질환 진료 의사들이야. 근 이십 년 동안 소아 인구는 절반이 되고 소아과 활동 의사수는 두 배로 늘었는데 소아 중증과 응급은 의사를 찾아 뺑뺑이를 돌지. 그놈의 미용 지피 탓도 있겠지만 소아 진료는 해도 법적인 리스크가 큰 진료까지는 안 하겠다는 부분이 훨씬 클 거야. 이 사법 리스크를 해결 안 하면 의대 정원을 두 배로 늘려도 소아 응급, 중환은 영원히 구급차에서 의사를 찾아 헤맬 거야. 대충 200명 뽑는데 50명 지원했으니 의대 정원을 삼천 명 두 배를 늘려도 산술적으로 100명 지원하겠네. 미용 지피 다 조져서 소아과 정원 200명이 다 차도 아마 앞으로의 소아과 의사들이 이런식의 중증 진료는 안 하겠단 거지. 궁극적으로 의료는 본질상 확실한 게 없어. 의사가 머리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렸음에도 판단을 잘못하거나 술기의 잘못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을 수밖에 없어. 의사가 살면서 잘못을 하는 경우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여기서 동의하지 않을 사람 많겠지만 이 의료의 불확실성, 그로 인한 필연적 오판과 실수까지 커버해 주지 않으면 소아 비롯한 각종 중환 처치는 갈수록 어려워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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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여기서 2밀리미터를 더 깊이 자르면 어떻게 되겠나?"

그가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신경 구조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겹보임(double vision, diplopia)가 생기나요?"

"아니 락트인 증후군(locked-in syndrome) 상태에 빠지지" 2밀리미터를 더 자르면, 환자는 눈을 깜빡이는 것 말고는 완전한 마비 상태가 된다. 담당의는 현미경에서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말했다. "내가 이걸 아는 건 이 수술을 하면서 세 번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일세"

<숨결이 바람될 때>

 

 

 

2-8)

공공 의료.

우리나라는 공공 의료가 전혀 제 기능을 하지 못 하고 있어. 다른 나라는 공공 의료 병상이 절반도 넘는데 한국은 20퍼센트가 안 될 거야. 내 동네 이야기를 또 하자면, 의료원 병상은 많은데 실제 중환 진료는 전혀 안 해. 쉬운 환자 진료만 해. 피 토하는 환자, 응급 수술해야 하는 환자, 응급 투석해야 하는 환자 전부 민간 병원인 우리 병원으로 온다고. 아마 전국 의료원 상황이 그럴 거야. 응급과 중환을 보려면 의사뿐 아니라 파라메딕도 팀을 구성해야 하고 추가 근무에 대한 인건비가 많이 들어. 한국 공공 의료는 돈 많이 든다는 이유로 그걸 아주 간단히 포기하고 있는 거지. 돈에 미쳐있는 사람쯤으로 묘사되는 병원장이 세운 민간 병원이 실제 지역 중환, 응급 환자들을 전부 소화하고 있다고. 생명 관련된 수가는 앞에서 말했듯이 적자일 때도 있어. 이럴 때 병원에서 다른 수익 경로로 쌓아놓은 재정이 없으면 어떤 생명도 살릴 수 없어. 지역 병원들이 윤리에서 크게 벗어난 경영을 하는 곳은 아마 별로 없을 거야. 다들 비응급 검사와 비응급 진료와 장례식장(ㅎㅎ) 같은 곳에서 곳간을 채워 넣고 있다가 살릴 사람 살리는 거지. 한 단면만 보고 돈을 챙기는 병원을 쉽게 비난하지 않았으면 해. 한국에서 부족한 의사는 동네 개원의가 아니고 각종 생명과 연관된 의사인데 이제 공공 의료에서 그들을 넉넉히 고용하고 법적으로 보호해 주면서 국민 건강을 챙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

3.

고령화 속도와 규모가 생각 이상이라 사실 의사 수를 이천 명 늘려도 나까지는 괜찮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 ㅎㅎ. 그래서 지금 학생, 인턴, 전공의들 같은 절박함이 없고 이렇게 선비 같은 글이나 쓰는 걸 수도 있겠지. 그래도 제발 이천 명은... ㅜ 아무튼 진료실에서 요즘 90대 환자를 하루에도 몇 명씩 봐. 기운 없다고 휠체어에 앉혀서 밀고 오는데 어디서부터 뭘 검사하고 뭘 해줘야 하나 막막하지. 십 년이 지나면 하루 몇 명이 아니라 하루에 열 명을 그런 사람 봐야 할 수도 있겠지. 인구 고령화로 환자의 의료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데 그걸 전부 커버하겠다는 건 내 생각에 정치인들의 과욕이야. 의사만 늘려선 건보 재정이 남을 수가 없어. 지금 50-60이 마지막 한국 자원 다 빼먹고 엑시트하려고 하는 건가 이런 생각만 들어. 지금 20-30의 건보료 부담이 막중해질 거야. 어떤 환자에 대한 지원을 줄이고 어떤 환자를 좀 더 챙기겠다 이런 구체적인 플랜이 있어야지. 의사 과잉 진료 막는 것만큼이나 환자의 의료 이용을 제한할 장치 역시 필요해. 본인 부담금 증액 같은 게 대표적인데 정치인들 입에서 이게 나올까? 결정적으로 돈의 문제를 떠나 필수 의료인을 옥죄는 사법 리스크를 해결하지 않으면 미래는 그냥 오래된 미래일 뿐이야.

하고 싶은 말이 더 많은데 더 쓰면 너무 중언부언일 것 같네. 내일의 근무도 있으니 이만 줄일게. 마지막으로 증원 사태를 겪고 나니 앞선 선구자들의 고통이 생생하게 다가온다는 말을 하고 싶네. 교사 꿀통이라고 욕 먹고, 공무원 꿀통이라고 욕 먹고, 공기관 성과급 욕 먹고. 현차는 킹차갓무직이라 욕 먹고 ㅋㅋ. 성토의 장에 올라가면 일단 여론에서 살아날 집단은 별로 없다 싶어. 몇 년 전인가 은행원 노조가 점심시간을 3교대로 갖겠다고 한 기사가 있었는데 댓글은 은행원들 비난 일색이었던 게 기억나네. 우리는 바빠서 점심시간밖에 은행에 못 가는데 너희들은 고액 연봉에 오후 네시면 일 끝나지 않느냐는 말들... 정말 한국 사회 그 자체였어. 자세히 말할 필요가 없겠지.

의협에서 인터넷 명언 남긴 회원들 윤리 강령으로 제제 좀 했음 하는 소망도 있고 ㅋㅋ. 아 말이 너무 길어져서 이만... 나머지 소통은 리플로.



세줄 요약

(1) 증원빔은 맞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2) 의료계엔 환자도 의사도 도덕적 해이가 있고, 공공 의료는 기능을 전혀 못 하고 있다. 사법 리스크만 해결해줘도 많은 문제가 풀릴 것이다.

(3) 이천 명을 늘리든 삼천 명을 늘리든 이게 현 의료 문제의 해법이라고만 믿는다면 의료 현실은 별로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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